작품은 한편의 영화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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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난아카데미 작성일20-03-13 14:00 조회2,762회 댓글0건본문
11월
난초의 완성된 작품은 영화를 한편 만드는 것과 같다.
복륜 화는 꽃잎에 나타난 복륜과 바탕색인 초록색의 만남이다. 줄이든 무늬 부분은 주연, 초록색은 조연이다. 그리고 화판 볼륨은 세 번째인 부 조연이다. 작품에서 꽃과 잎은 사 가지를 갖추어야 하고 이는 중심 출연진들이다. 국수풍은 총감독이다. 난초 포기가 갖춘 정도와 건강 도는 시나리오 즉, 대본이라 보면 된다. 화형=정면에서 볼 때 어깨 각도. 측면에서 볼 때 안아 있는 곡도. 잎의 두께. 화경의 안토시안 정도 등은 카메라 감독. 조명 감독. 분장 감독. 무술 감독, 음악 감독 등이다. 이게 모두가 잘 어우러져야 기생충처럼 흥행을 하는 영화가 된다.
난초 작품도 마찬가지. 하나의 품종이 작가를 만나 4-5년 동고동락하다가 시합에 나간다. 마치 경주마가 경기에 나갈 때 말과 기수가 일체가 되어야 좋은 기록과 성적을 낼 수 있게 되는 것과 같아 혼연일치가 되어야 한다. 말 따로 기수 따로는 절대로 성적을 원만히 하기 어렵다. 나는 20살 때 한국마사회에서 근무하며 말을 타 보았기 때문에 조금 안다. 그때 다친 부상이 아직도 남아 있다. 다 갖추었는데 주연이 조금 약해도 안 된다.
반대로 주연은 최고인데 조연과 중심적 배우들의 역량이 부족해도 안 된다. 각 감독들이 부족해도 어렵다. 마지막 다 되는데 총감독의 역량이 부족해도 안 된다. 끝으로 모두 다 되어도 시나리오가 기본이 안 되면 또 어려워진다.
나는 제자들을 지도할 때 위의 예를 들어 교육을 시키는데 한 번에 알아듣는다. 나는 난계가 잘 되려면 전시회 마인드(관점)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시회가 달라지려면 심판 룰(법)이 정교해야 한다. 그리고 기본을 갖추지 않아도 되는 일반부와 선수부로 리그를 구분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 집단이 구분되지 않고 혼재하니 문제가 많다. 특히 대회 룰을 평균 수준에 맞추다 보니 이쪽(실력자)은 이쪽대로, 저쪽은 저쪽대로, 시합 운영진은 갈피를 못 잡고, 판정 룰도 디테일하게 할 수 없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품종의 유전적 특성은 빛의 속도로 매년 기록을 갈아 치우는데, 작품의 수준과 제도는 전체의 입장을 담아내야 하니 조화가 맞지 않다. 일월화가 촉당 20~30만 원이고 신라도 마찬가지다. 머지않아 태극선처럼 금상 하나에 수 십 분이 나올 수 있다. 이때 일사 분란하게 1위에서 100등을 가려낼 기준이 필요하다. 나는 이미 대학에서 교재를 만들어 교육을 하고 있고, 수백만 원을 들여가며 배우러 오는 시절인 만큼 변해야 한다.
5월이면 전국 서점에 본 내용이 수록된 책이 나온다. 전시회는 작가들을 빛내고 기리는 장 인 만큼 기량 높은 기술을 선보인 분들이 대우받아야한다. 단가 높은 난이 아니라 기량과 기술력이 높은 것을 말한다. 돈 잔치가 아니고 기술 잔치를 보여주는 장이 있으면 좋다. 그간의 땀과 노고를 기리는 잔치 말이다. 이렇게 되어야 우리는 깊은 오르가즘을 체험할 기회가 생긴다. 이렇게 되면 인구는 늘어 날 것이다.
나는 30년간 연구해 만점의 룰과 만들어 냈고, 기술을 체계화했고 매뉴얼 화 시켰다. 작품이 무엇인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만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선수의 자질과 마음가짐은 어때야 하는가? 판정 기술과 채점 기준 실격(자격상실)과 페널티가 무얼 의미하는지? 20년 전부터 내가 외치고 주장했지만 아무도 엄두를 못 내던 이 일이 금년(2020) 모 사단법인에 채택 될 지경이다.
조금씩 바뀌고 있다. 또한 심판 기준을 나는 디테일하게 10년 전부터 다듬고 다듬어 냈다. 3년 전부터 대구가톨릭대학교 에서 프로 작가와 심판을 양성하는 특별 교육도 시행하고 있다. 반응이 좋다. 특이하게도 40대 들만 프로작가 및 심사 강의를 듣는다. 젊은 분들이라도 반응이 있으니 기쁘다.
금년 전시회가 없으니 꽃을 꺾어 물통에 담아 올린 사진을 많이 보았다. 그런데 몸은 어떻게 만들었고, 이 품종을 전략 품종으로 설정한 이유와, 어떻게 구했고 당시 몇 년생의 몇 촉이었는지? 스스로의 작품 관과 추구하는 방향과 방점을 필역한 것은 없었다. 꽃을 꺾기 전 현제의 자체 평가에 100점 만점에 몇 점인지를 분석하는 선수가 나의 제자를 재외 하면 없었다. 또 감점을 줄이려면 에 대한 자평하는 분들도 거의 보지 못했다. 전과는 달리 드문 드문 철사를 감지 않고 꽃을 피우는 방법은 문의는 제법 있었다. 내가 외부 강연에서 워낙 떠들어서 인 것 같았다. 그나마 이게 어딘가?
그러나 앞으로는 나아질 것이다. 바뀌지 않으면 다른 나라 춘란과 무엇이 다르랴? 깊이가 앝으면 금세 말라 버리는 접시 물 일수 있어 운이 따르지 않으면 무너질 수 있다. 만약 나 라면 전체 사진(대본과 감독의 역량)과 촉 마다의 잎의 장수와 길이와 폭과 잎 끝의 상태와 잎 표면의 감염도와 농약의 흔적 까지도 한 장 한 장 닦고 전시회가 없으니 출전 분으로 교채 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해서 전 과정의 스토리텔링을 해 자료로 남기고 기록으로 남길 것이다.
내가 몸담고 만들었던 여섯 개 난 우회는 대충 적당히 분수만 채우며 영혼 없는 출품작과 출전을 하는 분들이 있었다. 아쉽다. 선수로 출전을 하려면 최소한 그 난이 그간(그 품종을 통한 무 감점을 향한 완성도)의 기록이라도 갈아 보려는 작은 의지 정도는 녹아 있어야 한다. 이게 없으면 보물찾기 하는 초등학교 소풍과 얼마나 차이가 있으랴?
전국대회에는 국무위원의 상훈이기 때문에 출품이 아니고 출전이다. 출전은 선수이다. 선수가 선수다워야 한다. 관객들이 볼 때 노력한 모습이 묻어나야 한다. 그게 싫으면 초청을 자재하고 가족 전이나 개인전을 해야 한다. 아쉽다.
가을 운동회에 달리는 아이가 모두 등수를 노리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달리는 시늉은 해야 한다. 성적을 노리지 않더라도 걸어가선 될까? 선수인지 관객인지 헛갈릴 정도라면 대회에 누가 될 수 있다. 사람을 초청해 치르는 큰 규모의 시합이라면 최소한 2-3년 정도는 동고동락한 사이인 작품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의 작 품이 관객을 맞으려면 주연과 조연. 훌륭한 감독과 시나리오. 분야별 감독과 스텝 진. 세 가지의 틀을 [그나마] 염두 정도는 하고 만들었겠구나! 정도는 묻어나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
대구에서 대전 부산 광주가 가깝지 않은 거리이다. 이건 예의이다. 예의를 갖추도록 시합 주최 측의 계몽도 필요하다. 아쉬움이 많다. 턱없는 정도는 정중히 사절하던지 일 반부(2부) 리그를 시합 날 전시장에서 구획해 구분 지어 그기에 출품을 하도록 하면 어떨까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부끄럽다 여기면 내일과 내년은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재료비 2-3만 원쯤 들어간 꽃꽂이 세계도 계산해서 꼽는데 우린 어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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