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유정 명찰을 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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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난아카데미 작성일20-04-22 09:02 조회2,854회 댓글0건본문
오늘 근무복인 힌 가운을 세탁소에 맏기면서 명찰을 빼서 연구실 탁자에 올려 보았다. 관유정 과 대발
1991년 붓글씨를 배우던 시절이 었다. 라벨에 글씨를 예쁘게 쓰기 위해서 또 앞으로의 60년을 어떻게 살 것인가의 스스로 내게 던진 답을 찾고자 였다.대구 성당동 5거리 코너 해동 양복점 2층 천곡 서실 스승님은 계정 민희식 님의 제자이다.
신미(1991.)맹하(더운여름) 지절 어느날 .
아침 일찍 한통의 전화가 왔다. 이군 서실로 오시게
나는 당시 택시운전을 하며 재기를 위한 두번 째 종자돈을 만들기 위해 도급으로 차에서 숙식을 하다 시피한 시절.
도착하니 밤세 글을 쓰셨다.
산 더미 처럼 구겨서 쌓은 무덤 두 개와 두 장의 글씨가 놓여 있었다. 관유정과 만화원(만 가지의 품종을 개발해 성공하라는 뜻)
눈에 들어온 글씨는 관유정
밤세 쓰신것 중 제일 기가 많이 들어간 것이라고 말씀 하시던게 아직 생생하다. 표구를 해 연구실에 걸려 있다.
너그러운 사람이
넉넉한 인심으로
쉬었다 가는 정자 라는 뜻입니다.
이란 이름을 보니 고맙다.
이렇게 29년간 함께해 온 관유정
일본의 수락원 처럼 100년의 기업이 되었으면 좋겠다.
대발이란 호도 함께 하사 받았다.
크게 피어나서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라는 뜻으로 작명해 주셨는데 오늘 생각해 보니 나에게 너무나 잘 어울린다.
작명은 나의 서예 사부님이신 천곡서예 연구원 문영삼 님께서 하사하신 것이다. 명찰을 보니 27년전 그 날 아침 됫 바람이 기억 난다.
나는 사실 보잘것 없는 22살의 산채꾼이었는데
너무도 많은 분들의 축복이 서려 오늘을 살고있다.
이자릴 빌려 감사를 드린다. 한국춘란으로 일자리 만들어 보라고 임무를준 조국에도 감사를 드린다.
나의 성공보다는 난계의 성공을 더 바란다.
난계가 성공하는길이 나와 농업 국가 모두의 성공이다. 지금은 모두가 힘든시기 난초로 의학적 격리에 따른 스트레스와 불경기에 따른 고단함을 없에 주어야 한다,
여기에는 녹색 반려가 제일이다.
이번 국가적 위기가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시점이다.
나는 작년 여름 부터 기획하고 준비해 겨울 내내 써서 해를 넘겨 곧 여름이다. 두권이 모두 출간 될 때면 여름이다. 코로나가 먼지도 모를 시절에 시작했는데 코로나가 덮쳤다.
특히 금주 토요일 전국 서점에서 만날 수 있는 입문편은
나의 삶을 에세이 식으로 조금 싫었다. 저자의 30년 천신만고를 담았다. 코로나에 지친 분들에게 활력을 드리기 위한 녹색 복음서 이다. 저자의 삶을 보면 지친 여러분들은 위안이 될것이다. 사람이 저렇게도 살수 있구나 라는걸 볼수 있다. 힘을 얻으실것이다.
녹색 치료를 위해 저변확대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국가와 국민과 농업과 한국춘란과 나를 위해서 혼을 담았다.
볶아서 짤아서 담아주는 커피도 우리에겐 없어서 안 될 문화이다. 수 많은 다육식물 점 처럼 길거리 마다 난초 농원이 보이는 시절을 반드시 만들고 싶다. 난초도 커피 처럼 문화 콘텐츠이다.
그 중 금 번 두 권은 이 싯점에서 꼭 필요한 책이다. 700만 베이비 부머들에게는 딱 맞는 여가 꺼리 이다. 관유정 주인이 여러분들이 많이 쉬었다 가시라고 쓴 글이다.
삐삐 번호 빌리고 난초 빌리고 교차로를 빌려서(한국춘란 중투 산채품 염가 판매 - 구색 차원에 무료로) 난을 팔던 시절이 있었다. 자산은 기술과 간절함 뿐이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 나를 국가와 모두가 나를 이자리까지 인도 하였다.
국가의 부름을 받은 대한민국농업명장이다.
대구농림고원예과에서 ㅡ농대 원예과 교수(겸임.산학협력)도 했는데 무엇인들 못하랴!
앞으로 두권의 책을 더 써야 한다.
3편 무엇이든 물어 보세요&난초 명장의 하이 테크닉
4편 한국 춘란 예술의 세계
이것만 마치면 나는 내조국 대한민국에서
67.09.19일 알몸으로 태어나
국가가 부여한 작은 소임을 어느정도는 다할것 같다.
휴 56년 이 걸린다.
나는 대한민국 농업 프로이다.
부끄럽지 않는 프로로 남고 싶다.
한국춘란으로 100만명의 가벼운 도시농업과 가내농업의 터전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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