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난초를 하면서 스승님이 계신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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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난아카데미 작성일16-05-08 17:58 조회5,031회 댓글0건본문
5월 15일은 스승의 날입니다.
어린이날 다음이 어버이날 그리고 15일 이면 스승의 날입니다.
5월 5일은 나의 날이고
5월 8일은 부모님을 기리는 날이고
5월 15일은 스승님을 기리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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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렇게 생각 합니다.
나 자신 보다는 부모님이 더 중요하고
부모님 보다는 스승님이 더 중요하다고 말입니다.
자신의 부모님은 누구나 있지만 큰 스승님은 평생 못 만나는 분들이 있다고 합니다.
또한, 만났음에도, 못 알아보는 수도 있다고들 합니다.
인생을 바꾸게 해준 큰 스승은 부모님 못지않다 해도, 과언은 아닐 듯싶습니다.
저는 어릴 적 22살에 한국춘란에 입문해 난초를 배우고 익혀 가든 중 여러 개의 꿈들 중 하나의 꿈이자 큰 포부를 가슴에 품었었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한국춘란 기술자가 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일본의 부 농사인 흥화원을 벤치마킹 했는데 거기의 대표인 우메모또(1939년)씨의 경영 철학과 생산 기반 설비와 기술적 노하우를 지면을 통해 흠모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당시 저의 눈에 비쳐진 그의 기술은 눈부셨습니다...........
저의 생각과는 달리 한국춘란이 무슨 큰 기술이 있겠느냐는 식으로 대충 대충 난초를 대하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촉당 수천만 원을 넘나드는 난초를 다루거나 만질 때 보면, 기초적인 식견도 없어 보이는 경우도 저의 주변엔 참 많습니다.
더 나아가 농업(농사)이 무슨 큰 기술이 있으랴?
라는 예기도 가끔 듣습니다.
자동차 정비나 컴퓨터 수리나 여러 장인들의 기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세상이 바라보는 듯 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대충 말랐다 싶으면 물주고 적당한 때에 거름(비료)주고 또 반점이 생기면 약치고 겨울에 안 얼도록 기르면 그만이지 라는 식의 예기를 하는 분들이 실제로 있습니다.
평당 수천만 원의 수익을 낼 수도 있고, 아니면 수천만 원을 날릴 수도 있는 한국 최고가의 고부가 작물을 다루는 우리 세계에서 이러니 평당 5만원 내·외의 수익이 나는 다른 작물들 어떨까 싶습니다.
저는 대한민국농업 기술명장을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 농업 보다 더 대단해 보이는 기술 영역의 분들 230여분과 겨루어 27명 안에 들어 선발된 사람입니다. 즉, 난초는 아주 큰 기술이 있다는 예기입니다. 저가 몸담고 있는 농업 의 전 분야가 모두 다 하이 테크날리지적 요소가 집약되어야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시몬 페레스 대통령은 이렇게 말 합니다. 현대의 농업은 95%의 과학과 5%의 노동력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는 드론으로 씨 뿌리고 로봇으로 수확할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저는 세계 최고 수준의 한국춘란 기술자가 되기 위해 저는 23살의 나이 때부터 나름의 계획을 짰습니다.
한국춘란에 있어서 반드시 이해해야 하고 깊은 경지까지 이해를 하여야 하는 중요한 요소들이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한국춘란 농장 경영 계론.
두 번 째가 재배 생리학.
세 번 째가 화훼 원예학.
네 번 째가 유전 육종학.
다섯 번째가 경영학.입니다.
저는 이 다섯 가지 분야의 기술을 모두 배워야겠다고 계획을 세운 후
첫 번 째 스승님으로 구) 영남난원 정정은(영남대 원예학전공) 님
두 번째 스승님으로 경북대 생물학과 심학보 교수님
세 번째와 네번째 스승님으로 대구 가톨릭대 고재철 교수님
다섯 번째 스승님으로 다수의 경영학 박사님(영남대. 김인석 교수님. 등)들을 통해 하나 하나 완성시켜 나갔습니다.
5개 분야의 약 7분의 최고 수준의 스승님들의 지도를 받으면서 저는 그간 많은 일들을 해 냈으며 후진양성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위의 언 급 중 오늘의 저를 있을 수 있게 해 준 가장 고마운 분은 바로 정정은 님 입니다.
정은소를 산채해 더 유명한 저의 스승님은 부모님 보다 더 고맙게 해준 분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분의 제자로 들어가기 위해 볼링장에 위장 취직을 해가며 천신만고 끝에 수재자로 들어가 배우고 또 배웠었습니다. 본 스토리는 언론으로 많이 알려진 내용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 스승님이신 심학보 박사님은 가까이에서 지도를 받으려고 3년을 졸 졸 따라다니다가 그분이 근무하던 연구소에 이사로 위장 침투해 친분을 넉넉히 쌓은 후 하나하나씩 배웠습니다.
세 번째 스승님은 또 어떻고요
제자로 들어 가기위해 크리스마스 이브날 대구에서 가장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팔 들고 무릎 꿇고 30분을 벌 받기도 했는데 정말 눈물이 나는걸! 속으로 삼키면서 억지로 참으며 견뎌 냈으며 이 후 1년간을 졸 졸 따라 다니다 맥주병에 맞아 혹불 도 여러 번 났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후 문하로 들어가 학·석·박사를 모두 배웠으니 큰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섯 번째 스승님들은 제가 어느 정도 갖춘 후에 만 났으므로 이럴 땐 이 전종 경영학 박사님께, 저를 땐 저 전공 경영학 박사님께 쫓아다니며 배우고 또 배웠습니다.
저는 이것도 모자라 구간구간 마다 책사를 3분을 모시며 지략을 구해와 소금처럼 활용해 오늘 까지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큰 스승이 계십니까?
5월 9일 스승님을 모시고 저녁 파티를 합니다.
1년에 한두 번 삐쭉 얼굴 내민다는 게 사실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이 순간 하는 것도 없는데 머가 이리 바쁜지 라고 위로해 봅니다.
저에게도 문하생들이 있습니다.
금년 양말이라도 한 켤레 얻어 걸릴지는 행운이 찾아올지는 모르겠습니다.
대한민국농업명장 이대건 2016.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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