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붙여진 오래된 이름 관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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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난아카데미 작성일21-04-23 08:46 조회1,852회 댓글0건본문
이대발의 주말칼럼 제 52편
30년 전 붙여진 오래된 이름 관유정..
나의 첫 난가게 상호는 진천원예였다. 1989.6.7.
간판에 국가기능사의 집이라고 붙였다. 이젠 난초명장의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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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달서구 진천동에서 차렸다고 지은 이름으로
요즘 주소로는 달서구 유천동 595 번지다.
나는 유천동에서 자랐다. 동내는 낙동 강변에 위치한 곳으로 수박 참외 잠미 농사를 짓는곳이 있었고 산 쪽으로는 젓소 목장이 있었다. 동내 입구는 조경수를 생산하는 농장이 있었고 우린 논농사를 짓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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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원을 차린지 어느덧 32년이 지났다. 32년전 아비뇽 꽃집 사장에게 아비동 나무로 밤세 짓던 목제 비닐 하우스가 생생하게 생각난다.
이후 한번의 실패를 격고 재기를 꿈꾸던 시절 운명에 이끌려 다니던 천곡 서실에서, 1991년 여름 매미소리가 귀를 찌르던 30년전 내나이 25살 되던해 여름날 받은 관유정이란 당호로, 진천원예는 나의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관유정(당호)과 대발(아호)을 받아서 오늘 까지 30년 이다!
무척 정들었다. 어원은 이렇다. 너그럽고(寬) 넉넉한(裕) 분들이 모여서 노니는 정자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집의 주인은 큰일을 할것이다(大發). 이다.
난원을 차린지 어느덧 32년이 지났다. 32년 전 아비뇽 꽃집 사장에게 아비동 나무로 밤새짓던 목제 비닐하우스가 생생하게 생각난다.
이후 한 번의 실패를 겪고 재기를 꿈꾸던 시절 운명에 이끌려 다니던 천곡 서실에서, 1991년 여름 매미소리가 귀를 찌르던 30년 전 내 나이 25살 되던해 여름날 받은 관유정이란 당호로, 진천원예는 나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관유정(당호)과 대발(아호)을 받아서 오늘 까지 30년 이다!
무척 정들었다. 어원은 이렇다. 너그럽고(寬) 넉넉한(裕) 분들이 모여서 노니는 정자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 집의 주인은 큰일을 할 것이다(大發). 이다.
아호가 대발 이라 참 절묘롭다.
나의 호가 난계에 도움 되는 일을 해 난계를 지켜내어라!
그러면 좋은 사람과 형편이 되는 분들이 너를먹고 살게는 해줄것이다. 그리한다면 훗날 크게 이름도 날 것이다 라는 뜻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내가 인문계를 안 가고 농고를 간 것
내가 군 면제 대상인데 굳이 군 엘 간 것
내가 천천히 차려도 되는데 22살에 난원을 차린것
내가 라벨 글씨 예쁘게 써보려고 서실을 간 것
내가 1등급을 생산하고 싶어서 대학을 간 것
내가 농사만 지어도 되는데 난계 지키고자 한 것
내가 후원회 멤버들에게 감사코자 명장에 도전 한 것
내가 춘란 저변 확대 코자 대한민국 홍보대사가 된 것
내가 춘란을 알리고자 농림축산식품과학기술대상을 받은 것
내가 모함에 빠진 천종을 구제코자 명명을 한것
내가 춘란 농가 교육을 한 것
내가 나의 기술을 책으로 쓴 것
내가 대국민 홍보를 위해 유튜브를 한 것
내가 100만 저변 확대를 위해 난문화 진흥원을 만든 것
오늘 관유정이 쓰인 명찰을 보니 많은 생각이 든다.
부산 동래원예고등학교 명장 공방 첫 수업을 간다.
나에겐 새로운 역사이다. 35년 전 나를 보는듯한 아이들을 지도한다. 나를 능가하는 스타 농부가 탄생되어지길 빌어 본다.
2021.사월 넷째 주
대한민국난문화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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