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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갑용 애란인과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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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난아카데미 작성일20-03-10 16:48 조회3,04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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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용 애란인 

 
27살 때 대구 범어동 자택 난실을 방문 했었는데 
반 지하의 난실에는 명품들이 즐비했었다.
 우리나라에서 두화 라는 장르를 효시하다 시피한 분으로
40세 초반에 이미 대구에서는 대가 반열에 오를 정도로 열심히 난을 향한 도전을 멈추지 않으신 분이었다. 
 
 나와의 인연은 도재식으로 난을 배울때 스승님의 단골 고객이셨다. 이분은 이창문 선생님께 서예를 배우셨고, 나는 문영삼 선생님에게 글을 배웠다. 태백난교회 맴버였었고 훗날 나도 잠시 그 난우회에 회원으로도 활동을 하기도 했다. 
 
 나는 어릴때 회사가 커지면 난계에서 존경받을 삶을 사신분 중 한분을 지배인으로 같이 일을 했으면 하는 꿈이 있었다.
 김갑용씨는 14살 선배였는데 살아계시면 68세 이다. 이분이 사업 실패로 실의에 빠졌을때의 일이다. 어디서 만나게 되었는데 건강이 나쁘셨는데 난초옆에서 죽고싶다고 하신다. 난초를 그 만큼 좋아 하신 분이다. 나는 그 꿈을 이루어 드렸다.   3년간 관유정에서 근무를 하시고 지병으로 새상을 떠났다. 
 
난초란 무엇인가?
죽는 날까지 친구로 남는다는게 신비롭다.
나는 처음부터 업으로 들어와 너무나 많은 질시와 난계의 학대속에서 풀칠하다보니 취미인으로서의 정서는 잘모른다.
 살아 생전 소심을 그렇게 좋아하셨는데 천국엔 난초가 있으려나
 
이런 고결한 분들과 난을 다루던 옜적이 가끔 떠온른다.
20년 전과는 정서가 많이 달라졌다. 애란인의 열정과 도전 의식은 쇄퇴해져 가는 것 같다. 난초가 넘쳐나는 시절이라 
더하다. 흰 고무신을 신고 삼배 옷을 입고 다니시던 기계 넘치던  당신이 오늘 따라 그립다. 
 
나는 프로이다. 
프로는 철저히 승리하기 위해 스스로를 길들인 사람이다.
누군가에게 나도 멋진 사람으로 남을수 있을까 의문이든다.
난계 한번 깨끗하게 하려고 달러온 30년 얻은것도 많고 마음 아팠던적도 많았다. 대부분이 꺼리는 악역이 나에게 주어진 임무라 나도 내가 맘에 안든다. 
 
한때 나의 별명이 전국대회 저승사자라 불린적도 있었다. 난초를 많이 안다는게 다 좋은일만 있는게 아니였다.
요사이는 심사를 가지 않는다. 제자들이 전국대회에 심사를 꽤  많은 분들이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할 일은 숲을 다듬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도 때가 되면 죽는다. 그래서 서둘러 책을 지었다. 교재 한 권 충실 한 것 없는 불모지 같은 이곳에 비 한방울 내려 주고자 했다. 앞으론 오늘보단 더 나아져야 한다. 난계의 주인이 누구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애호가인지. 나같은 프로인지. 산채 인 들인지. 미래에 난과 함께 여생을 보낼 분 들인지. 난초로 울 먹이는 사람들 인지. 웃는 사람들인지. 
 
  만약 주인이 있다면 주인답게 난계가 밝고 깨끗하게 만드려는 주인의식을 가져 주었으면 좋겠다. 나도 지겹고 힘들다. 주인도 아닌데 주인들이 해야 할 일을 수 십년째 하고 있으니 왠 말인가?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는가? 김갑용님께서

이박 같은 후배하나 만들고 좀 쉬지 그래 라던 말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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