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여왕 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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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조선농회보 22권 1호에 게재된 ‘부업으로서 가능성이 있는 난초재배’라는 제목의 글을 본 적이 있다. 이처럼 난초는 과거나 지금이나 도심농업의 절대 소득 작물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10월 추란(秋蘭)의 계절이 끝나고 11월 첫 서리가 내리는 쌀쌀할 때 꽃이 핀다 하여 붙여진 한란(寒蘭)의 계절이 됐다.
우리나라에서 한란은 신비로운 난으로 분류된다. 춘란은 향기가 미미한 데 비해 한란은 맑고 달콤한 향기가 나 귀한 대접을 받으며 4군자의 소재로 문인화에 자주 등장한다. 한란은 일본과 한국, 그리고 중국에서 자생하는데 중국 종은 키가 커 감상 미가 떨어지는 반면, 우리나라 종은 아담한 특성이 있어 여성스럽다. 일본은 자생 면적이 우리나라보다 넓어 우수한 신품종들이 많다. 필자가 태어난 1967년 한란과 한란 자생지(自生地)가 천연기념물 191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개체군의 부족으로 신품종의 출현빈도가 일본보다 낮다. 몇몇 특징이 없는 일반 한란들도 자생지의 녹음에 가려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잘 기른 한란은 꽃이 필 때 춘란이 범접할 수 없는 기품과 아름다움, 신비로움이 묻어 있어 과거 대구에서도 춘란보다 한란을 더 고품격으로 여기던 시절도 있었다.
그 시절 제주도의 1년생 미만 한란의 유묘(幼苗)를 밀반출한 것을 어렵게 입수해 5~8년을 기른 후 꽃을 피워본 경험이 있다. 필자도 한때 한란에 매료돼 공부한 적이 있는데, 1990년 당시 인기 있었던 일본 한란 풍설(風雪)은 1촉에 300만원을 호가하기도 하였다. 한란은 여러 송이의 꽃이 아래쪽부터 차례로 꽃망울을 터트리는데 마치 학의 부리를 보는 듯하며 감미로운 향이 퍼지면 세상의 시름을 잊을 수 있는 향기가 뿜어져 나온다.
제주도 한라산 남(南) 경사면의 해발 200~800m에서 자생하는 제주(한국) 한란은 근래에 들어 내륙에서도 채집되어 아름다운 꽃을 피운 사례도 있다. 동양란의 제왕인 1경 1화 춘란은 중국에서 발원하였다고 본다면 한란은 일본이 중국보다 앞선다.
이대건(난초 명장) 작성일: 2013년 11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