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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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난아카데미 작성일16-02-07 13:38 조회2,000회 댓글0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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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금년 9월 대한민국 명장에 선정이 된 아주 운이 좋은 45세의 인생 풋내기 이다. 아직 배울 것이 너무도 많은 나이이고 이제껏 살아온 짧은 날은 난초 연구를 하느라 다 보내 인생은 잘 모른다. 금년 나와 함께 선정된 명장님들이 26분이나 더 있다. 한분 한분의 면면들을 보노라면 나는 왼지 초라해 진다. 나를 포함한 모두를 국민의 정성으로 고용노동부가 견문을 넓혀 각자의 영역에서 국가의 미래를 밝게 빚 추는 등불이 되라는 의미로 7박 8일(11월 1 오전 11시~11월 8일 오후 11시) 간의 긴 여정을 보내 준다고 한다. 금년 천운의 기회로 만난 26명의 2012년 명장님들과 공단의 인솔자 2분 그리고 현지안내를 책임진 여행사 직원 1분을 포함해 모두 30명으로 공항에서 만나니 서로가 서먹하였다. 나는 얼마 전 같은 지역의 최윤석 열처리 명장과 얼굴을 익힌 터라 말을 붙이며 한분 한분들과 조심스레 면을 터기 시작 했다. 우리는 인천 공항에서 첫 목적지인 네덜란드 암스텔담 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집채보다 더 큰 비행기였다. 기내에서의 12시간은 자다 깨다의 반복하며 기내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우리 모두는 두 번의 기내식을 하였고 어느덧 시간을 거슬러 내가 꼭 가보고 싶었던 꽃의 나라 네덜란드에 도착을 하였다. 호텔에 도착하니 현지 시각으로 오후 5시경을 가리킨다. 숙소를 배정 받았고 나의 룸메이트는 최윤석명장 이었다. 짐을 숙소에다 내려놓고 아담한 회의실에 모여서 회장단을 뽑고 각자 자기소개도 간단히 치른 후 우리는 피로함을 가시려 각자의 룸으로 향했다. 잠시 후 벨이 울렸다. 모두들 모여서 신임 회장단과 각 파트별 27명의 명장님들의 친분을 높이기 위한 파티가 열렸다. 알콜이 “가면을 녹이는 신비한 액체”라더니 작은 량이지만 소주를 마시며 우리는 점점 하나가 되기 시작 하였고 둘째 날 밤을 지냈다. 외국 일정의 현지 첫날 아침 해가 밝아 왔다. 우리는 아침을 유럽식으로 해결하고 투어 버스에 올랐다. 도착한 곳은 3대째 장미 농업을 하며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젊은 농장주와 농장을 견학한 후 풍차가 돌아가는 풍차마을에 도착을 하였다. 풍차 마을에 도착을 하니 우리 동기 명장 중 최윤석명장의 진가가 서서히 발휘되기 시작 하였다. 다름 아닌 최명장은 국제 사진전에 입상을 여러 번한 경험이 있는 프로 작가였다. 최명장의 사진 찍는 솜씨는 가히 일품이었다. 이후 우리는 한식당으로 향해 점심을 먹고 공항으로 이동을 하였다. 이어 약 2시간가량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곳은 바로 이테리였다. 이테리에 도착을 해 우리는 짐을 내려 놓고 저녁이 조금 부족했던 차라 숙소 옆 멕도널드에 갔다 우리 방 최 명장과 나 그리고 옆방의 포철에 근무하는 철의 달인 김영식 명장과 자동차 정비의 최고봉 강금원 명장과 함께였다. 우리는 허기를 달래고 숙소에서 세 번째 밤을 보냈다. 비가 보슬 보슬 내리는 두 번째 아침을 맞았다. 보슬비가 내리는 정원을 산책 하며 비를 좀 맞았다. 이윽고 이테리의 유물의 꽃이라 불리는 원형 경기장과 주변 유적을 관람 하였다. 나는 실로 놀라움과 경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이는 우리 모두가 마찬 가지였다. 전 세계에서 방문 한 관람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우리는 하루의 일정을 소화하고 숙소로 돌아 왔다. 나와 우리 모두는 분명 느낀 점이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바쁜 일정 탓에 나는 녹초가 되어 네 번째 밤을 보냈다 아침이 밝았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이 테리에서 본 유적 중 가장 눈부신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바로 피렌체성당 이었다. 나는 입이 쩍 벌어져 할 말을 잃었다. 이후 우리는 가죽 공예로 유명하다는 곳으로 향했고 가죽 공예가들의 혼을 느낄 수 있는 계기를 가졌다. 그리고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독일로 향했다. 독일에 도착을 해 저녁을 한식당에서 먹었는데 나는 너무나 반가워 한 냄비를 비벼서 뚝딱 해치웠다. 좀 살 것 같았다. 숙소에서 명장님들과 짧은 회의를 마치고 곡차를 한잔 씩 간단히 하다 보니 동기명장 중 가장 열심인 홍순기 명장(총무)의 고군분투 하에 김순자 명장(회장)님의 카리스마가 그리고 강금원 명장(수석 부회장)의 리더십에 어우러져 우리는 완전히 하나가 되어갔다. 우리는 이렇게 다섯 번째 밤을 났다. 현지 일정 4번째 맞는 아침 드디어 맥주의 고장 독일에서 대망의 아침 해가 밝았다. 우리 가 찾은 BMW 유물 전시관 은 또 다른 감동이었다. 몇 몇 곳 관람을 마친 후 이동 중 나는 허태영 명장이 퇴직하면 귀농을 하고 싶다 하여 조언을 해주며 타고난 유머 감각을 끄집어내 팀의 지루함을 가시게 하였다. 이윽고 숙소에 들어와 몇 몇 회칙을 결정한 후 경기 수도권(서울 경기 인천)의 11분의 대표를 정매자 명장님으로 낙동강전선(경북 대구 울산 대전)의 8분의 팀장으로 최윤석 명장님을 그리고 이순신 장군의 넋이 서린 부산 경남의 8분을 대표하는 차주홍 명장님을 선출하고 각 지부별로 미팅을 마친 후 여섯 번째 밤을 보냈다. 쌀쌀한 날씨에 뮌헨 시청사를 돌아보고 오후에는 고성을 돌아보고 숙소로 돌아 왔다. 오늘이 마지막 밤인지라 아쉬웠는지 저녁에 남은 소주를 마저 비우려고 모였다. 아니 이게 왼 일! 실종되었다던 소주랑 김치 랑이 모여들었다. 우리는 외길 삶의 회고와 조국에 대한 감사함으로 완전 한 몸이 되어 갔다. 이렇게 긴 여정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마지막 날 아침 항공 국제 박람회를 관람 하고 짧은 인사 등을 나누고 점심을 먹고 우리는 공항으로 향했다. 비행기에서 약 10시간을 날아오니 한국은 벌써 11월 8일 오후를 향하고 있었다. 30명의 팀원들은 무사히 귀국을 하였고 모두들 12월 회합을 기약하며 해어졌다. 본 졸고의 끝자락에 산업인력 공단 김해경팀장님, 성차경차장님, 여행사 이내리님, 현지 가이드 선생님들 그리고 “마부작침”의 길을 굳굳이 걸어오신 26분의 명장님들 특히 사진을 찍느라 노고가 많았던 최윤석 명장님 수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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