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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지전과 쌀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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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원자 작성일14-02-04 15:07 조회16,344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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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지전과 쌀강정

 

어제 이른 아침부터 손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할머니 우리 지금 출발해요. 전은 제가 할 거니 남겨놓으세요.”

“주늠이도요.” 작은 손자도 꼭 형을 따라서 모든 걸 같이 한다. 이름이 ‘준흠’이인데 아직 발음이 정확지가 않다. 떡국을 먹으면 5살이 된다. 38개월 늦은 나이인데 해만 더한다.

 

전에 마른 차례 준비는 해놓아서 어제 오후까지 두 아들 내외 그리고 손자들과 북적거리며 산적, 전, 나물 등을 만들었다. 두 손자 아이의 손과 거실바닥은 온통 밀가루 범벅이 되었다. 그래도 재미있다고 야단들이다. 두 손자 서로 동그랑땡을 만든다고 야단이다. 동그랗고 납작하고 찌그러지고 크기도 각기 다르다. “내가 더 잘 만들었지롱.” 서로 내기한다.

 

우리 어렸을 때 엄마는 꼭 설날이 오면 집에서 강정을 만들어 주셨다. 설이 오기 며칠 전 장날에 뻥튀기 아저씨한테 쌀과 검은 콩을 튀겨오고 조청과 엿을 사다 놓으시고 설 전날 낮에는 차례상에 놓을 전, 나물 등을 하셨고 저녁이 되면 “모두 자지 말고 있어야 한다.” 하시며 강정을 만드셨다. 요사이 시장에 파는 강정과는 달리 맛과 정성이 듬뿍 담긴 강정이다. 엄마가 아직도 살아계시면 해마다 설이면 만들어 주실 텐데. 엄마가 그립다.

 

어렸을 때 대구에서 자라서 대구에서는 부추를 정구지라 한다. 커다란 소쿠리에 웬 정구지전을 그렇게도 많이 하셨는지? 냉장고가 없었을 때이다. 엄마는 마당에 아궁이를 만들고 커다란 가마솥 뚜껑을 엎어놓고 전을 부치셨다. 기름은 며칠 전에 아버지께서 돼지고기를 사다가 솥뚜껑에 지지셨다.

 

기름이 아래로 뚝뚝 떨어지는 것을 모아서 밖에 두면 굳어 기름이 된다. 예전에는 그렇게 기름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요즈음 같으면 난리가 날 것이다. 콩기름 좋다고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또 지금은 건강에 나쁘다 하지 않는가? 포도씨유가 제일 좋다 한다. 예전에는 상상조차 못 한 기름인데….

 

정구지를 솥뚜껑에 죽 펴 놓고 가을에 꽃밭에서 따서 말린 치자를 밀가루 물에 타서 만든 반죽을 주욱 부으면 지글지글 기름에 맛있는 소리가 온 동네에 퍼진다. 차례가 없는 집 친구들도 모인다. 넓게 한 장 부치면 어느새 우리 형제들 한 장씩 들고 먹는다.

 

친구에게도 나누어 준다. 부치는 속도 보다 먹는 속도가 더 빠르다. 그래도 엄마는 이럴 때나 실컷 먹으라고 야단치시지 않으셨다. 커다란 소쿠리에 가득 만들어 장독대에 갖다 두셨다. 갖다 놓고 돌아서면 없어진다. 또 정구지를 씻어 더 많이 만드셨다.

 

우리 엄마는 꼭 밤에 강정을 만드셨다. 냄비에 엿만 하면 너무 딱딱하므로 조청을 같이 넣고 서서히 녹이고 다 녹으면 뜨거울 때 쌀밥 튀겨 놓은 것을 넣고 골고루 섞었다. 엿이 식으면 잘 붙지 않는다. 그리고 넓은 도마에 죽 펴고 칼국수대로 납작하게 밀어서 밖에 내다 놓으라고 우리 형제들에게 시키셨다.

 

한겨울의 밖은 춥다. 그래서 얼른 굳으라고 밤에 하신 것이다. 어느 정도 굳으면 칼로 먹기 좋게 사각형으로 자르셨다. 콩도 같은 방법으로 하셨다. 우리는 다 굳을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 눅눅한 강정을 손으로 뭉쳐서 둥글게 만들어 먹었다. 그때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몇 해 전에 한 번 강정을 해 본 적이 있다. 그런데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그래서 둥글게 뭉쳐서 먹었는데 그 맛도 괜찮았다. 전을 부치며 이런 말 저런 말을 하다 보니 강정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내년 설에는 한 번 다시 만들어 보아야겠다. 손자 아이들에게 눈썹에 밀가루를 발라 줄까? 애들에게 엄마가 그러셨던 것처럼.

 

엄마는 설날 전 그러니까 동지섣달 그믐날 일찍 자면 눈썹이 센다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 형제들은 잠들지 않으려고 참다 참다 못해 잠이 들면 엄마는 우리들의 눈썹에 밀가루를 하얗게 발라 놓으셨다. 다음날 자고 일어나 눈썹이 정말 하얗게 되었다고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이유도 모르는 채.

 

그런데 큰 며느리의 얼굴이 시큰둥하다. 내일 설날 출근을 해야 한단다. YBM 학원에 근무한다. 학생들 하루쯤 쉬게 하면 안 되나? 12시에서 6시까지 근무인데 직원 반만 근무하는데 번호를 돌려 걸린 사람만 출근한단다. 6번이었단다. 근무 당첨 번호란다. 복권은 당첨된 적이 없는데….

 

하필이면 이럴 때냐고 얼굴이 시무룩하더니 이내 포기하고 얼굴이 밝아졌다.

“무슨 명절날에도 나간다냐?”

“그러게요. 학생들은 명절도 없나 봐요.” 하긴 차례가 없는 집은 평소와 같을 것이다.

 

저녁에 다들 돌아가고 다시 오늘 설날 아침에 모두 왔다. 모처럼 조카딸 내외 조카 손녀가 아침 일찍 왔다. 이모부, 이모에게 세배하러 왔단다. 반갑기 그지없다. 한복을 싸 와서 손녀딸에게 입힌다.

“이런 어느새 이렇게 컸네. 작년에 맞던 옷이 깡총하다. 족두리 쓰고 각시춤 추면 딱 좋겠네.”

모두 한바탕 웃었다. 아이들은 해마다 쑥쑥 큰다.

 

큰손자 아이 유치원에서 배웠다고 두 손 가지런히 모으고 증조할아버지와 할머니께 절을 공손히 올렸다. 두 동생도 따라서 절을 올렸다. 약속대로 큰 손자 아이가 지방을 삼촌과 태웠다. 식사할 때 미리 사둔 막걸리에 설탕을 조금 넣어 건배했다. 옛날 엄마가 막걸리에 설탕을 조금 넣어 손가락으로 휘휘 저어 주셨던 것처럼.

 

“할아버지 할머니 복 많이 받으세요.” 세배를 하고 모두 복주머니를 벌린다. 돈이 뭔지도 모르는 작은 손자 아이 다섯 장이나 된다고 좋아하다 이내 아빠에게 맡긴다. 크면 달라고 한다. 내일은 시댁 식구인 시누님들이 집에서 오빠를 보러온다. 한바탕 웃음이 가득할 것이다.

 

명절날이면 하는 ‘섰다’는 아무나 할 수 있다. 사람이 많을 때 하는 우리 고유 놀이다.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놀이다. 정말 재미있다. 눈물 콧물이 뒤범벅되도록. 올해는 누가 많이 따서 개평을 누구한테 줄라나? 그래서 나는 차리느라 힘들어도 명절이 좋다. 모두 모여 한바탕 웃는 즐거운 명절이 되니.

 

모레는 친정아버지 만나러 간다. 우리 형제들과 같이, 아버지는 과연 증손자들의 세배를 몇 번이나 받을 수 있을까? 그래도 아직 정신이 뚜렷하시고 건강하시다. 정말 다행이시다. 엄마의 명까지 누리시는 것 같다.

“아버지 일요일에 갑니다. 오래 건강하셔야 해요.” 전화 드렸다. 또 한바탕 웃음이 되겠다.

 

<시니어리포터 조원자>

댓글목록

난아카데미님의 댓글

난아카데미 작성일

원자님 세해 복 많이 받으세요^^

별 것 아닌 내용 같아 보여도 여러 번 읽어 보니 와 닿는 무언가 가 있네요^^

즐독 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