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회를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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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난아카데미 작성일14-07-26 12:47 조회25,293회 댓글12건본문
2011.7월 저는 농장을 판매하고 좀 쉬면서 새롭게 출발하려 했습니다.
제가 살면서 가장 힘겨웠던 시절이 아니었나 생각 됩니다.
2007년 시작한 조직배양연구로 석사 학위논문을 쓰느라 너무 무리를 한 탓에, 저는 2009년 그만 몹쓸 희귀
병에 걸려 경북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가 기적적으로 식물인간이 되었다가 기계에 의 해
삶을 연명하다가 기적 적으로 걸을 수 잇게 되었습니다.
제가 누워 있던 곳은 응급실 맨 안쪽 중환자실에서 더 안쪽에 침상 4개가 놓여있는 집중응급중환자실 3번째
침상이었습니다. 당시 뇌만 살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움직일 수가 없는 상태로 등창에 걸릴까 걱정되어 저
의 몸을 간 병사들이 뒤집으며 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당시 조금 호전되어 말이 들 릴쯤 주치의께서 운이 좋으면 1~2급 수준의 장애자로 평생을 살수도 있다고 말
했습니다. 저는 살기는 사는 구나 기뻤습니다. 이로 인해 저의 가족들은 전동 휠 처를 구하려고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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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저의 침상 옆에서 두 사람이 시신이 되는걸! 지켜보며 저는 침상에 누워 곰곰이 생각에 잠기게 되었
습니다. 내가 태어나 농업을 알았고 난초를 알게 되어 살아온 지난날을 회상해 보니 회한도 기쁨도 많이 있
었습니다. 나는 내가 퇴원을 하면 무얼 하지라고 저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결론은 나의 오랜 꿈인 “짱꼴라(China Cym.-goeringii)와 Korea Cym.-goeringii 의 혼돈에서 제자리를 찾
아주는 원산지 판별에 관한 연구를 해 세계최초로 연구해 100% 한국산 만 취급하려는 농가와 또 진짜 한국
춘란만을 선호하는 애호가들과 짱꼴라나 일본산이라도 꽃 만 좋으면 괜찮은 집단과의 마찰을 최소화 시켜
주는 연구 결과를 세상에다 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그림 같은 유리온실을 지어 네덜란드나 대만 그리고 일본의 농가들에게 처지지 않은 생산 시설을
만들어 그 온실 초석에 “이대발난연구소”라는 이름 석 자 새겨 보는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죽기 살기로
재활을 했으며 기적적으로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
2009 년 여름 퇴원을 한 후 곧바로 부지 매입에 들어갔고 지금의 농장을 부지를 안내받아 2억짜리 집 한 채
밖에 없던 저는 집◦토지◦기타 금융◦개인에게 총 8억을 빌려 온실을 지었습니다. 농장을 짓고 나서 곧바로
학위 연구에 들어갔고 전국의 23개 시 군 도(島)를 해매며 연구를 했고 마지막으로 중국의 두 곳을 끝으로
연구를 마치고 논문을 쓴 후 2011.8월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꿈에 그리던 한◦중 간 원산지 판별 연구로
한권의 책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참 ! 여한이 없었습니다. 종심 하던 날 합격을 받고 얼마나 울었던지
~~~~~~~
당시 3년간의 박사 연구 때문에 직원을 많을 때는 3명 까지 늘린 적도 있었습니다. 공부하느라 사업은 소홀
히 하였고 연구를 마치고 나니 회사 사정은 최악이었습니다. 난 값의 폭락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달
았고, 직원을 한명씩 내 보내며 저는 열심히 강연을 다녔으며 사업에 다시 집중을 하였습니다.
제가 공부 하느라 힘들 때 저의 집사람은 날일을 해가며 저의 학비를 보탰으며 무리한 대출의 이자 감당이
안 되어 저는 가락지까지 다 팔고 공포의 월말을 맞이하며 피폐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로인해 저의 집사람은 신경쇄약과 스트레스 및 과로에 의해 중병에 걸려버렸고 아내의 소원이자 주치의
의 권고가 바로 모든 걸 내려놓고 직업을 바꾸라는 것이었습니다. 난 사업에 계속 미련을 두면 제발 하여
전이가 되면 장담을 못한다는 의사의 말에 21살에 멋도 모르고 저의 꾐에 빠져 시집온 아내를 보니 난을 때
려 치는 게 맞다고 결심 했습니다. 연구도중 이자를 못 막는 달이 오면 연구를 포기하고 사업에 집중 하고
싶을 때도 참!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만두려고 결심했으며, 저의 지인이 내막을 알고 도립 농업(난) 연
구직에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와 곧바로 매각을 추진했습니다.
저는 집사람 암 판정 금 5000만과 난초 땡 저분 하면 1억 정도로 해서 1억 5000 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려했
고, 그 즈음 거재도 강의에서 저의 수료생인 땅콩님의 눈물어린 고백으로 인해 또이 님의 기고로 이어져 들
꽃바람님의 귈 심으로 후원회가 태동되게 되었습니다. 후원회로 말미암아 매월 많은 수의 기부금이 들어왔
으며 동정에 의해 매출도 신장이 되어 갔고, 저 또한, 죽기 살기로 사업에 매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집
사람에게 분위기가 이렇게 돌아가니 조금만 참고 기다려 달라고 졸랐습니다. 또, 이제 난계 발전 보다는 실
속 있게 하겠다! 라고 하며 말입니다.
이 후 저는 저를 지지해 주시고 물심으로 보살펴주신 분들에게 무엇으로 보답할까 고민 하다가, 난계발전을
더 크게 더 확실하게 해주는 것 이란 결심을 했고, 그러려면 지금보다 더 높은 위치에 가야 세상이 내말을
귀담아 들어 줄 것이라 판단 해 명장에 도전장을 냈습니다.
이 후 3년간 후원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과 난을 구입해주신 분들 그리고 저를 안타깝게 여기며 같이 고민
해 주신 분들에게 머리 숙여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이대건 씀
댓글목록
흙진주님의 댓글
흙진주 작성일
와~~~대단한 신념 이십니다
기어코 일어서 명장의 마패를 검어쥐셨군여
끈질긴 인내력에 찬사를 보내며 앞날에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펜대님의 댓글
펜대 작성일
그 누구가 명장님의 생명연장을 알리요.
제이에 인생 분투에 노력하신 신념. 잘극복하시고 일어선 관유정.
더욱더 힘찬 박수로 대성하시길 바람니다. (인생 스토리을 아신분은 아시것지만 대단하십니다.)
깜씨님의 댓글
깜씨 작성일끈기와 인내로 이겨내낸 결실 입니다. 많은 발전 기원 합니다.
Vietnam님의 댓글
Vietnam 작성일명장님 열정에 박수를 보낼 뿐입니다. 명장님 계속해서 화이팅입니다!
동담님의 댓글
동담 작성일
그동안 참으로 마음 고생이 많으셨네요.
앞으로 명장님께서 하시는 일에 좋은 일만있으시길 축원드립니다
와우산님의 댓글
와우산 작성일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은 대충 짐작을 했었지만,
명장님과 사모님의 신상에까지 그런 고비가 있었음은 몰랐습니다.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나 봅니다.
기적과 같은 회복과 후원회의 태동, 이 모든 것이 아직은 명장님이 이 난계에 필요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닐까요.
두 분의 건강이 꼭 회복되시길 빌며, 아울러 사업도 더이상 고비없이 순항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삼족오님의 댓글
삼족오 작성일
그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고진감래!!!
난아카데미님의 댓글
난아카데미 작성일
삼족오님.
이젠 쨍!하고 해뜰날만 기다려 볼랍니다.
그간 감사했습니다.
해동님의 댓글
해동 작성일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마시고 승승장구 하시고
대한민국을 넘어 중국, 일본등 세계 난계의 최고의 난 神이 되길 응원합니다. ^&^
난아카데미님의 댓글
난아카데미 작성일네
체키장님의 댓글
체키장 작성일고생하셨습니다 더욱더 발전하는 관유정이 되길 소원합니다
해용님의 댓글
해용 작성일
많은 애환이 있었네요.
앞으로는 좋은날만 있을거라 짐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