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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촬영 2013.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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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1-03 12:05 조회1,73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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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여러분 그간 안녕하녔습니까?
저는 절반의 인생 25년은 춘란과 함께 해왔습니다.
그간 25년의 절반은 "입신"해왔었습니다.
바로 "춘란의 대중화"와 "세계화!"이지요!
나는 살면서 대학에서 학생들을 만날 때나 나에게 강의를 청하는 시민에게 항상 어떤 행위나 일을 계획 할 때는 그것에 대한 가치와 정체성을 미리 조각해 보라고 권한다.

무엇 때문에 그리로 가는가 거기에는 정말 거기에 있을까?............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통해 국가의 미래와 발전을 염두에 늘 두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과거 저에게 추상 가 이상 가 라는 등의 수식을 붙여 주었었지요!

나는 지구위 대표적 자원부족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야생에서 탄생되는 특 고부가의 천연 유전자원인 한국 춘란을 통해 국민 정서를 순화시키고 참여 농가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고 이를 통해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자 저 나름으로는 저의 인생 절반을 일념으로 길을 걸어왔었습니다.

저는 반드시 내 생에 춘란 농가들의 활로를 열어 한국춘란이 국민 춘란으로 거듭나 대대손손 아파트 발코니 마다. 주택의 마당마다.
사무실의 구석구석 춘란의 녹색 물결로 온 국민이 춤을 추는 그날을 꿈꾸며 달려왔습니다.
그 과정 중 이 꿈을 이루는데 저해가 되는 요인들을 케어 시키느라 노력도 많이 했었습니다.
 또한, 건전하고 메뉴얼화된 보다 투명한 난계 한번 만들어 보려고 부단히도노력해 왔었습니다.
며칠 전 대전에서 열린 "대자협" 세미나에서 4부 강의를 하면서 하나라도 배우려고 긴 시간 저의 졸강에 귀기울이는 청강생들을 보노라니 더욱 책임감(오블리쥬)이 생기더군요.
 10년전 쯤 부터는 "불혹" 사실 저는 난계의 조광조란 별명을 얻어가면서도 내 뜻과 배치되는 새상(난계)의 논리와 타협해 본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나는 난계의 국민적 관심과 환심을 구해야만 내가 꿈꾸는 일을 해 낼수 있다 여겨 여러 각도로 고민한 끝에 내가 유명인이 되고자해서 그 어렵다는 대한민국명장도 되었지요!

그것도 부족해 약 500명의 명장 중에 1명을 뽑는 명장 중의 명장인 "국민 스타 명장"에 도전을 하였고, 더디어 저는 2013년 국민 스타가 되었답니다.

국민스타가 되면 5개 방송사 방송과 수많은 언론지등에 출연을 하고 광고에 나갑니다.곧 내가 기다려 왔던 그 때가 다가 오고 있습니다.

회원 여러분 광고 촬영 잘 마치고 돌아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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