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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15일 새벽 4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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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난아카데미 작성일17-01-15 05:57 조회4,8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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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5일 새벽 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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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9도를 가르칠 것 같은 새벽이다.

 

벌써 난실 밖은 -8.5도를 가리킨다. 난실 안은 철통 보안으로 난로와 전열에 의해 5.3도를 유지 시키고 있다. 어제 일기 예보를 보니 나의 난실이 있는 대구 수성구 범물 동은 -8도쯤 내려간다고 했는데 산자락에 위치한 탓에 늘 1~2도는 더 낮다.

 

모처럼 만에 글을 써본다.

어제는 화훼 연구소 빈철구 박사와 영남대 박경일 박사랑 한국춘란 일자리 창출 연구 과제에 관해 예길 나누며 11시쯤에 눈을 붙였다. 최고로 춥다고 하는 날인데 야간 당직 직원이 일을 그만 두게 되어 내가 야간 당직을 40일 째 서고 있는데 내 팔자는 난을 모시고 살아야 하는 처량한 신세가 된 듯싶다는 생각이 난다.

 

20년 정도 겨울을 치르다 보니 난실 온도 체크를 위해 야간에 2시간 간격으로 저절 로 잠이 깨어진다. 신기하기도 하고 한 푼 벌어서 먹고산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기도 하다.

 

나는 4시경 잠을 깨어 잠시 TV를 켜 보니 한편의 영화가 눈에 들어온다.

재목은 영웅이란다.

 

스토리는 이렇다.

정의의 편에서 길을 가려는 자와 현실과 타협 하려는 자의 가치와 이해의 충돌을 묘사한 무사들의 결투였다. 이 영화를 통해 현실과 타협하는 사람을 끝내 꺾어 정의로운 사람이 이긴다는 뻔한 스토리였다. 이른바 권선징악난 문득 나이 50을 넘기면서 선은 원론 적인 걸 말하는 건지 결과론 적인 걸 말하는지 좀 헛갈릴 때가 많아지는 것 같다.

 

나도 예전엔 그렇지 않았다.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과정이 선하면 된다고 믿어 왔었다. 그런데 한 50년을 살아보니 이도 좀 흔들리는 것 같다. 이론과 현장의 괴리라고나 할까?

 

영화를 보면 늘 등장하는 스토리가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고 혹세무면(惑世誣民-그릇된 이론이나 믿음을 이용해 사람들을 속이고, 그들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모습을 가리키는 말) 하는 자들을 응징 하여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대부분의 스토리는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고 혹세무민 하는 자들을 응징 하려면 많은 이들의 숭고한 희생을 반드시 치러야만 한다. 또한, 모든 영화는 선을 권하고 있다. (정의롭지 않음)을 응징하여 정의로운 세상을 구현해 나가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정의를 세우는데 있어 희생되어가는 이들의 삶은 안타깝지 아니한가? 라는 생각이 50을 넘기면서 자꾸 드는걸 왜일까? 나의 이념이 바뀌는 걸까? 나도 때가 묻어가는 걸까?

 

오늘 내가본 영화 속 주인공은 정의를 바로 세우려다 백성의 90%의 희생을 치러서라도, 아니 단 한명만 남더라도 정의를 위해서는 추호의 두려움이나 어떤 희생이 따를 지라도 정의를 세워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영화 속 주인공의 대사가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내가 어릴 때 늘 떠들고 다니던 구절이라 더 하다. 모두의 희생이 따른다면 과연 과정의 당위성만으로 해석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구상의 가장 결속력이 높은 집단이 바로 개미 집단이라 한다. 개미 진단도 들여다보면 계급이 있고 놀고먹는 집단을 일개미들은 탓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쩌면 인간만이 수평과 평등을 추구하는 것일까?

 

선악계오사(善惡階吾師-선한사람도 악한사람도 다 내겐 스승이라)의 경지에 달하지 못한 소인배인 내가 얼마나 알고 무엇을 정답이라 말 하겠는가?

 

우리난계는 분명 도탄에 빠진 그룹이 과거로부터 있어 왔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이들은 누가 보살피고 챙겨야 할 까? 또 이들을 구재하고 혹세무민하는 자들을 응징하는 영웅이 우리난계에는 있어야 할 까? 자율에 맡겨야 할 까? 또 있다면 언제쯤 나타 날련 지? 누가 이런 일을 수행해야 할까?

 

왜 모든 영화들은 천편일률적으로 다 그렇게 정의롭지 않아도 잘 굴러가는 현실과 선을 긋는 테마로 제작을 하는지? 또 정의롭지 않게 행하여야 득을 보고 재미를 보고 하는 현실과 동떨어진 마치 이상주의자처럼 대본을 만들까?

 

우리 난계는 나의 눈에 언젠가부터 현 사회상을 그대로 나타내는 빈익빈 부익부의 표본처럼 되어 비쳐진다. 이건 또 정의로운 쪽의 산물일까? 그 반대일까? 이렇게 비쳐지는 사람은 나 한사람뿐일까? 더 있을까? 나의 양가감정에다 답도 없는 질문을 던지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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